제6공화국의 주인공

2022. 6. 10.

마침 6월 10일이라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공화국 시리즈’라 불리는 드라마가 있다.
1981년 제1공화국 방영을 시작으로 2005년 제5공화국 방영까지 각각의 공화국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주요 사건들을 다룬 현대 정치 사극이다.
그중 내가 본 것은 제5공화국뿐이 없는데, 드라마 제5공화국은 10.26.사건에서 시작하여 5공 청문회까지 다루며 전두환 정권기의 각종 사건에 대해 잘 다루고 있다.

‘제6공화국’ 역시 마땅히 드라마로 다루어져야 하건만, 아직 개헌이 되지 않아 제6공화국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제작 계획은 요원한 것 같다.
이러한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국회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

그런데 만일 드라마 ‘제6공화국’이 만들어진다면 그 주인공은 누가 되어야 할까?

예전에는 시즌제 드라마로 시작하여, 노태우-김영삼 정부를 시즌 1,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시즌 2,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시즌 3 이런 식으로 시즌을 나누어 방영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전 공화국 시리즈와는 다르게 제6공화국은 ‘주인공’이 명확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 1987은 이러한 면을 잘 알고 87년 민주화운동을 ‘군상극’의 형태로 연출하였다.
영화는 명확한 주인공이 없음에도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며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모이고 조직되어 힘을 얻고 민주화라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영화가 그렇게 연출될 수밖에 없었듯이 87년 민주화운동은 시민이 주인공인 사건이고,
그 결과로 출범한 제6공화국 역시 시민이 주인공인 시대이다.
‘한국인은 국난극복이 취미’라는 농담처럼 실제로 제6공화국의 동료 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각자의 역할을 해왔다.

역사는 영웅의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것이다.
따라서 응당 드라마 제6공화국의 주인공 역시 민중이고 시민이어야 할 것이다.

시민이 주인공인 역사가 자랑스럽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연세대학교 출신임을 자랑스러워 한다.
입시결과 때문이 아니라 이한열 열사를 비롯하여 제6공화국의 문을 가장 앞에 서서 열어준 동료시민들을 동문 선배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이 주인공인 드라마 제6공화국을 기대한다.

‘어떤 나중에’는 ‘어떤 당장’보다 빠르다.

2022. 4. 2.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특히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권 등 여러 사회적 진보 의제에 있어 문재인 정부는 ‘나중에’를 외치기 바빴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참석한 성평등 관련 행사에서 문재인 후보의 기조연설 도중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난입하여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막고 거센 항의를 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그 행사의 참석자들이 나중에 발언 기회를 얻어 발언하라며 “나중에!”를 외치며 운동가들의 항의를 봉쇄한 일이 이었는데, 그 이후 진보정당 및 그 진영에서는 민주당은 성소수자 문제 및 각종 사회 의제를 맨날 ‘나중에’ 해결하려는 것이냐고 비꼬곤 해왔다.

그러나 정말 민주당 정부에서 아무런 진보가 없었는지 되묻고 싶다.

민주당 지지층의 이념 성향은 매우 넓고, 그중에는 혐오문제에 있어 국민의힘과 유사한 사상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층 중 진보 블록에 속하는 사람도 분명 있고,
그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진보 의제에 덜 진심이라나 혹은 당사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반보라도 전진’하는 것이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선명성 투쟁보다 사회의 진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가장 급진적인 진보는 다수파가 되는 것’임을 믿는 사람들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뽑겠다는 후배에게 문재인을 뽑아달라고 말하면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동성혼까지는 못하겠지만 임기 내에 낙태, 양심적 병역 거부 등 그동안 사회 갈등을 일으켰던 많은 의제들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결국 이뤄졌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한들 동성혼을 인정하는 나라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나,
연대관계인 제도 등으로 우회해서 관련 부분에 유의미한 진전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진보는 그렇게 반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항상 민주당이 사회적합의를 핑계로 개혁의제에 ‘나중에’를 말한다고 한다.
왜 진보정당들처럼 ‘당장’을 외치지 못하냐고 한다.
그러나 ‘어떤 나중에’는 ‘어떤 당장’보다 빠르다.

심상정 후보는 이번 대선의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당장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약속하라고 윽박질렀다.
본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고 이재명 후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본인이 할 생각은 없고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하라면서 민주당에게는 의지가 없다고 힐난한다.

심상정 후보의 그런 태도는 결국 진보는 민주당이 이뤄내야 한다는 자백이다.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의 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하지 못하는가? 의석이, 힘이 부족하다고?
민주노동당이 탄생했을 때부터 진보정당이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역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끝내 기반을 잡았다면, 지금은 진보정당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결국 진보정당이 ‘당장’만을 외치며, 멋이 없어보이는 지역정치 같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무엇도 이룰 수 없는 약한 지지기반만 남았다.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이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당이 패션 정치, 화전민 정치만 해왔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논란이 되니까 사회적 합의를 핑계대는 것 아니냐는 심상정 후보의 질문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회 전체의 의견을 거스르는 계몽 군주가 필요하지 않다.
다소 늦더라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을 꾸준히 설득하며 조금씩 함께 실현해 나아가는 것이 옳음을 믿는다.

어떤 진보진영 지지자는 나에게 ‘나중에’를 곱게 포장하려 애쓴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나는 “네, 님은 그냥 계속 민주당 지지자 싸잡아 욕하고 계세요. 저는 그동안 민주당 개저씨들 설득해서 반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 볼게요. 5년 뒤에 반보 앞에서, 또 반발짝 가지고 싸워요”라고 답했다.
결국 반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이고, 너희는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가 나아간 반발짝 앞에서도, 계속 입만 털고 있을 것이라는 조롱이지만,
그 분들은 사회 진보 의제에 진심인 것이 아니라, 패션으로서 진보를 말하는 분들이니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2022년 우리는 대선을 졌고, 이로부터 사회적 퇴행이 일어날 것임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가오는 보수정부로부터의 사회적 퇴행을 가장 앞에서 막아내야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다.

윤석열 당선인과 그리스 신화식 자기실현적 예언

2022. 3. 22.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이 화제다.

코로나, 산불 등 당선인이 챙길만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차기 5년을 이끌어 갈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내놓은 ‘국정과제1호’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인 것도 이상한 일이고,
대통령이 가야겠으니 국방부와 합참에게 당장 짐을 빼고 방을 비우라고 하는 것도 절차, 예산, 권한 문제에 있어서 합당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와 합참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또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갈 경우 대통령 출퇴근 시 교통 통제 등으로 인한 교통체증, 대공포대 재배치, 고도제한 등에 따른 용산과 그 인근 지역의 부동산 개발 문제도 논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에 따른 환경 정화 및 그 비용 문제도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한 수많은 우려에 그를 불식시킬만한 제대로 된 대답은 어디에도 없지만,
당선인은 청와대에 하루라도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청와대에 하루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아크로비스타’에 살고 있는 당선인이 하기에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아니다.

취임일부터 국방부 청사를 쓰겠다고 했다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니 서초동 자택에서 통의동으로 출퇴근하겠다고 한다.
통의동으로 출퇴근한다 하더라도 가까운 청와대 관저에서 지내며 출퇴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만,
당선인은 청와대로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당선인은 청와대 내부에 있는 소위 벙커, 국가위기관리센터에도 안들어간다고 한다.
대신 불편을 감수하고 대통령이 지방 출장 시에 임시로 사용하곤 했던 국가지도차량을 집무실 이전 때까지 위기관리센터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모두 무리한 계획이지만, 거침없다.

대통령실 이전은 지금부터 이전 계획을 세우고, 숙의하여 절차에 맞게 이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하루라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죽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이상하니, 청와대에 가면 안되는 다른 이유, 혹시 당선인이 무속적인 영향을 받아 이상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무속 논란은 후보 시절부터 줄곧 제기되어 왔다.
대통령 후보경선 과정에서 당선자는 ‘천공스승’을 멘토라고 말한 바 있으며, 그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유승민 후보에게 천공은 훌륭한 분이라고 역정을 냈다고 알려진 바 있다.
또한 ‘건진 법사’와 같은 무속인이 실제 캠프 내에서 실무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공개된 김건희 씨 통화 녹취에 따르면 김건희 씨는 ‘도사님’들과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는 걸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 바 있고,
실제 김건희 씨 또는 당선인 본인과 인연이 있다는 무속인들의 제보와 증언도 다수 있었다.

여기에 청와대가 흉지이며, 용산은 용이 지나다니는 왕의 땅이라는 풍수지리적 견해까지 덧붙는다.
청와대는 최고의 흉지이며, 죽은 자들이 가는 땅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다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시중에서 돌았다.

그런고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로 가지 말라는 도사님의 무속적 계시를 받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론은 좋지 않다.
보수언론조차 대통령 집무실을 말리려는 사설과 칼럼을 내놓고 있고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치 여론조사에서 아직 취임을 하지도 않았는데 부정이 긍정을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일어나버렸다.
취임도 전에 레임덕이 왔다며 ‘취임덕’이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다.

윤석열 당선자의 이러한 행보와 일련의 상황은 그리스 신화식 자기실현적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당선자가 무속인으로부터 청와대에 들어가면 망한다는 ‘신탁’을 받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대통령이 되면 망한다는 비유적인 뜻이었으나,
그 예언을 들은 당선자는 어떻게든 청와대에 가지 않으려고 각종 무리수를 던진다.
그리고 그 무리수들 때문에 결국 진짜 망함으로써, 대통령이 되면 망한다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나는 심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건 때문에 망하기를 바란다.
정치적인 의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더 문학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코발렙스카야 그랜트

2022. 3. 14.

세계수학자대회는 4년 주기로 열리는 국제수학학술회의로서 전 세계에서 대략 5000여 명의 수학자들이 참가하는 가장 큰 규모의, 전통이 있는 학회이다.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필즈 메달의 수여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이뤄진다.

나도 대학원 입학 직전인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해 본 바 있다.
당시에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많은 수학자와 대화도 해보았고, 영감도 얻었으며, 여러 세션에서 강의도 들어봤다.

2022년에는 러시아 상트빼째르부르크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나는 박사과정생 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6년 이내의 신진수학자들에게 참가비용 및 숙박비, 식비, 체재비 등을 지원해주는 ‘코발렙스카야 그랜트’에 지원했고, 운이 좋아 그랜트 수여 대상자로 지정되었다.

그랜트를 받은 것도 내 경력에 어쨌든 좋은 일이고,
이제 학술적으로 조금은 비빌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많은 수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더 성장할 기회가 되길 바랐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을 지나는 분위기에 따라 여름쯤에는 종식 선언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기 때문에
대회가 끝나고도 며칠 더 체류하면서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 그것도 여름의 상트빼째르부르크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뻤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결국 국제수학연맹이 러시아의 개최를 거부하였고, 결국 세계수학자대회는 온라인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의 코발렙스카야 그랜트 수여는 취소되었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나의 원수이다.
그에게 김재규 같은 충신이 있길 바란다.

마지막 패배

2022. 3. 10.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졌다.
5년만의 정권교체다.

민주당 지지자로서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리기 벅차다.
아직 더 해볼 것이 남아 아쉽기 때문이고, 그동안 이뤄놓은 것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늦은 밤까지 대선 결과를 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다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때는 어떤한 의지도 기력도 없어서 오늘은 내내 집에 누워 앓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집 앞 공원에서 할머니들이 깔깔대며 대선 결과를 기뻐하는 소리가 들린다.
억장이 무너진다.

 

승자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패자는 눈이 녹길 기다린다 했다.
다시 겨울이 왔지만 우리는 눈을 밟으며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후보를 뽑아달라고 말한 사람들에게 민주당원이 되어서 민주당을 지켜달라고 부탁하려 한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패배이길 바란다.

남천

2022. 2. 22.

어제 K3를 팔기 위해 행신에 간 김에
엄마, 연주와 파주 조인플라워에 드라이브 겸 다녀왔다.

이런 저런 식물을 파는 화원 같은 곳이었는데, 연주가 뭐 하나 사준다고 골라 보라고 했다.
평소 식물을 크게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좁은 집에 식구 하나 더 들여서 뭐가 좋겠나 싶어 처음에는 거절했었다.
그러나 남천이라고 불리는 이 아이를 보자마자 너무 예뻐서 반했고,
가격도 8천원 밖에 안하길래 우리집 식구로 들이기로 했다.

결혼 초부터 우리집에서 함께한 녹보수 선생님이 푸른 색이시니,
그 옆에서 좋은 색감을 내줄 것을 기대하기도 했고,
키우기 쉽다고도 하고, 미신이지만 액운을 막아준다고도 하니 더 좋았다.

남천은 햇빛을 잘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채광이 좋다.
이 집을 계약한 결정적인 이유도 채광과 거실 창으로 보이는 정원이었다.
오늘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하러 오신 아주머니도 집 앞 전경과 채광이 참 좋다고 하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하는데,
나는 팔자좋게 화분과 햇빛 이야기나 하고 있다.
평화로운 나의 일상을 위해서라도 선제타격 운운하며 한반도의 안보위기를 초래하는 얼치기 정치집단이 정권을 잡지 못하길 바란다.

세계 정세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3차 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
Franz Ferdinand를 들으며 알탕에 소주 한잔 하려 한다.

디오판토스의 나라

2022. 2. 5.

간밤에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과 한복 공정에 대해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중국이 한복을 자기들 것으로 우기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인데,
마침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을 기회로 한복을 입은 조선족을 앞세워 한복이 마치 자기들 것인양 하는 행태에 많은 한국인들이 분노한 듯 하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타국 문화뺏기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에 비해 문화적으로 덜 성숙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며
근 몇 년 내에 중국인들 스스로도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우리도 가까운 과거에,
싸울아비가 사무라이의 어원이었다느니, 환국이 어쨌다느니,
그런 식의 문화공정을 통해 문화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티를 팍팍 내야했던 때가 있었고,
그 얼마 뒤에는 ‘두유노우싸이?’ 이 지랄하고 있었던 때가 있었으나,
전 세계적으로 꽤 인정받는 문화강국이 된 지금은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우리 문화를 과장하며 문화공정을 하려 하지도 않고,
‘두유노우비티에스’ 이런 질문도 안하며, 되레 그런 과거를 되려 부끄러워하고 있으니까.

중국의 문화공정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화두는 “윤동주는 어느 나라 시인인가?”라고 생각한다.

윤동주는 1917년 중화민국 길림성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일본제국 후쿠오카에서 죽었다.
윤동주가 살았던 시기에 조선 내지는 대한제국,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화두를 왜 흥미롭다고 생각하는지는 이 글에서 밝힐 것은 아니고,
이 글에서는 윤동주처럼 국적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가능한 ‘디오판토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디오판토스는 부정방정식과 정수론 쪽에서 연구 업적을 남긴 수학자이다.
수학 교과서 뿐 아니라, 위키피디아 등등 모든 자료에서는 디오판토스를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라고 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이름이 매우 고대 그리스 수학자 같기는 하다.
그런데 정말 디오판토스는 고대 그리스인인가?

먼저 고대 그리스가 어떤 시기인지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는 학술적으로 기원전 1100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로서,
우리가 흔히 ‘고대 그리스’하면 생각나는 아테네, 스파르타 등의 도시국가와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이 있던 시대를 지나,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의해 점령된 시기와 그 이후의 헬레니즘 시기를 지나,
기원전 146년에 로마가 그리스를 속주로 삼으면서 ‘고대 그리스’는 끝이 난다.

그런데 디오판토스는 대충 기원후 3세기 정도에 활동하였다고 알려져 있다.(정확한 생몰년도는 알려져있지 않음)
즉, 3세기인 디오판토스는 시기적으로 고대 그리스인이 아니다.

또한 디오판토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가 태어난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 전역과 이집트, 페르시아 등을 씹어먹고 다닐 때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따 이집트에 지은 도시이며,
알렉산더 대왕 사후 이집트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세워지면서 그리스와는 별개의 도시가 되었고,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대충 1세기 즈음)부터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3세기의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그리스라고 할 수 없으므로,
알렉산드리아인 디오판토스는 지리적으로도 고대 그리스인이 아니다.

그런데 왜 모든 수학 교과서에서 디오판토스를 고대 그리스인이라고 하죠?

왼쪽 발목 염좌

2022. 1. 17.

지난 목요일.
계단을 내려오다 헛디뎌 왼쪽 발목이 접질리게 되었다.

우두둑 소리가 났지만, 이전에도 비슷하게 몇 번 발목을 접질려 본 경험이 있어서,
금방 낫겠거니 하고 아픈 발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하룻밤 끙끙 앓고 났더니
밤새 통증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음은 물론이고
왼쪽 복숭아뼈가 거의 주먹만한 크기로 퉁퉁 부어있었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 한쪽 발만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정형외과에 갔고,
물리치료를 받아 상황은 크게 호전되고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으나,
당분간 발목 부목과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소식을 들은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술 먹고 넘어졌냐고 물어본다.

참나, 아니라고요.

약을 먹는 동안은 술을 마시지 못할 테니,
이번 강제적 음주를 통해 조금이나마 절주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첫 글이자 만 번째 글

2022. 1. 2.

언제부턴가 내 일상과 단상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소싯적에는 나름 ‘좋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그때의 아이디어와 감성은 지나친 음주와 자기파괴적 일상을 거치며
어디론가 다 흩어져 버리고
내가 앙상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도 했고,

하고 있는 생각을 표현하고, 남기고, 공유하고 싶다는 자기표현 욕구도 일기를 쓰고 싶은 이유였다.
내가 워낙 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 연유로 나는 오래전부터 일기를 쓰고 싶어했는데,
항상 그렇듯 나의 계획은 너무나 거창했으나,
불행하게도 나는 너무도 게을렀다.

이 글은 내가 일기를 쓰고자 욕망한 날부터
매번 머릿속으로 써보았던 만 번째 ‘첫 글’이다.

첫 글로 뭐가 좋을지 늘 고민해 보았는데,
일기를 쓰기 시작한 부끄러운 마음을 면치하는 변명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솜씨가 없어 내 글을 웹 상에 게시하기에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그런데 뭐, 일상의 잡감이니까.
쓰다 보면 글도 늘겠지.

치킨을 시켰다.
드디어 첫 글을 쓴 기념으로
저녁에는 치킨과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을 먹으며
또 알코올 기운 가득한 자기파괴적 저녁을 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