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과 그리스 신화식 자기실현적 예언

2022. 3. 22.

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이 화제다.

코로나, 산불 등 당선인이 챙길만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차기 5년을 이끌어 갈 대통령 당선인으로서 내놓은 ‘국정과제1호’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인 것도 이상한 일이고,
대통령이 가야겠으니 국방부와 합참에게 당장 짐을 빼고 방을 비우라고 하는 것도 절차, 예산, 권한 문제에 있어서 합당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국방부와 합참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또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갈 경우 대통령 출퇴근 시 교통 통제 등으로 인한 교통체증, 대공포대 재배치, 고도제한 등에 따른 용산과 그 인근 지역의 부동산 개발 문제도 논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미군기지 반환에 따른 환경 정화 및 그 비용 문제도 중요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한 수많은 우려에 그를 불식시킬만한 제대로 된 대답은 어디에도 없지만,
당선인은 청와대에 하루라도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청와대에 하루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아크로비스타’에 살고 있는 당선인이 하기에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아니다.

취임일부터 국방부 청사를 쓰겠다고 했다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니 서초동 자택에서 통의동으로 출퇴근하겠다고 한다.
통의동으로 출퇴근한다 하더라도 가까운 청와대 관저에서 지내며 출퇴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만,
당선인은 청와대로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당선인은 청와대 내부에 있는 소위 벙커, 국가위기관리센터에도 안들어간다고 한다.
대신 불편을 감수하고 대통령이 지방 출장 시에 임시로 사용하곤 했던 국가지도차량을 집무실 이전 때까지 위기관리센터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모두 무리한 계획이지만, 거침없다.

대통령실 이전은 지금부터 이전 계획을 세우고, 숙의하여 절차에 맞게 이전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하루라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죽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이상하니, 청와대에 가면 안되는 다른 이유, 혹시 당선인이 무속적인 영향을 받아 이상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무속 논란은 후보 시절부터 줄곧 제기되어 왔다.
대통령 후보경선 과정에서 당선자는 ‘천공스승’을 멘토라고 말한 바 있으며, 그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유승민 후보에게 천공은 훌륭한 분이라고 역정을 냈다고 알려진 바 있다.
또한 ‘건진 법사’와 같은 무속인이 실제 캠프 내에서 실무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으며,
공개된 김건희 씨 통화 녹취에 따르면 김건희 씨는 ‘도사님’들과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는 걸 좋아한다고 직접 말한 바 있고,
실제 김건희 씨 또는 당선인 본인과 인연이 있다는 무속인들의 제보와 증언도 다수 있었다.

여기에 청와대가 흉지이며, 용산은 용이 지나다니는 왕의 땅이라는 풍수지리적 견해까지 덧붙는다.
청와대는 최고의 흉지이며, 죽은 자들이 가는 땅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다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시중에서 돌았다.

그런고로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로 가지 말라는 도사님의 무속적 계시를 받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여론은 좋지 않다.
보수언론조차 대통령 집무실을 말리려는 사설과 칼럼을 내놓고 있고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기대치 여론조사에서 아직 취임을 하지도 않았는데 부정이 긍정을 앞서는 ‘데드크로스’가 일어나버렸다.
취임도 전에 레임덕이 왔다며 ‘취임덕’이라고 놀리는 사람도 있다.

윤석열 당선자의 이러한 행보와 일련의 상황은 그리스 신화식 자기실현적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당선자가 무속인으로부터 청와대에 들어가면 망한다는 ‘신탁’을 받았는데,
사실은 그것이 대통령이 되면 망한다는 비유적인 뜻이었으나,
그 예언을 들은 당선자는 어떻게든 청와대에 가지 않으려고 각종 무리수를 던진다.
그리고 그 무리수들 때문에 결국 진짜 망함으로써, 대통령이 되면 망한다는 예언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나는 심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건 때문에 망하기를 바란다.
정치적인 의견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더 문학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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