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중에’는 ‘어떤 당장’보다 빠르다.

2022. 4. 2.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특히 시민의 기본권과 자유권 등 여러 사회적 진보 의제에 있어 문재인 정부는 ‘나중에’를 외치기 바빴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참석한 성평등 관련 행사에서 문재인 후보의 기조연설 도중
성소수자 운동가들이 난입하여 문재인 후보의 발언을 막고 거센 항의를 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그 행사의 참석자들이 나중에 발언 기회를 얻어 발언하라며 “나중에!”를 외치며 운동가들의 항의를 봉쇄한 일이 이었는데, 그 이후 진보정당 및 그 진영에서는 민주당은 성소수자 문제 및 각종 사회 의제를 맨날 ‘나중에’ 해결하려는 것이냐고 비꼬곤 해왔다.

그러나 정말 민주당 정부에서 아무런 진보가 없었는지 되묻고 싶다.

민주당 지지층의 이념 성향은 매우 넓고, 그중에는 혐오문제에 있어 국민의힘과 유사한 사상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층 중 진보 블록에 속하는 사람도 분명 있고,
그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진보 의제에 덜 진심이라나 혹은 당사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반보라도 전진’하는 것이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선명성 투쟁보다 사회의 진보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가장 급진적인 진보는 다수파가 되는 것’임을 믿는 사람들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뽑겠다는 후배에게 문재인을 뽑아달라고 말하면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동성혼까지는 못하겠지만 임기 내에 낙태, 양심적 병역 거부 등 그동안 사회 갈등을 일으켰던 많은 의제들에서 의미있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결국 이뤄졌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재명 후보가 당선이 되었다 한들 동성혼을 인정하는 나라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나,
연대관계인 제도 등으로 우회해서 관련 부분에 유의미한 진전을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진보는 그렇게 반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항상 민주당이 사회적합의를 핑계로 개혁의제에 ‘나중에’를 말한다고 한다.
왜 진보정당들처럼 ‘당장’을 외치지 못하냐고 한다.
그러나 ‘어떤 나중에’는 ‘어떤 당장’보다 빠르다.

심상정 후보는 이번 대선의 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당장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약속하라고 윽박질렀다.
본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고 이재명 후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본인이 할 생각은 없고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하라면서 민주당에게는 의지가 없다고 힐난한다.

심상정 후보의 그런 태도는 결국 진보는 민주당이 이뤄내야 한다는 자백이다.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의 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하지 못하는가? 의석이, 힘이 부족하다고?
민주노동당이 탄생했을 때부터 진보정당이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역정치를 외면하지 않고, 사람들을 설득하며 끝내 기반을 잡았다면, 지금은 진보정당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결국 진보정당이 ‘당장’만을 외치며, 멋이 없어보이는 지역정치 같은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무엇도 이룰 수 없는 약한 지지기반만 남았다.
사회가 진보하지 못하는 것은 민주당이 의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정의당이 패션 정치, 화전민 정치만 해왔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논란이 되니까 사회적 합의를 핑계대는 것 아니냐는 심상정 후보의 질문에,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정을 실현시키기 위해 사회 전체의 의견을 거스르는 계몽 군주가 필요하지 않다.
다소 늦더라도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들을 꾸준히 설득하며 조금씩 함께 실현해 나아가는 것이 옳음을 믿는다.

어떤 진보진영 지지자는 나에게 ‘나중에’를 곱게 포장하려 애쓴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나는 “네, 님은 그냥 계속 민주당 지지자 싸잡아 욕하고 계세요. 저는 그동안 민주당 개저씨들 설득해서 반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가 볼게요. 5년 뒤에 반보 앞에서, 또 반발짝 가지고 싸워요”라고 답했다.
결국 반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이고, 너희는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가 나아간 반발짝 앞에서도, 계속 입만 털고 있을 것이라는 조롱이지만,
그 분들은 사회 진보 의제에 진심인 것이 아니라, 패션으로서 진보를 말하는 분들이니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2022년 우리는 대선을 졌고, 이로부터 사회적 퇴행이 일어날 것임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가오는 보수정부로부터의 사회적 퇴행을 가장 앞에서 막아내야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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